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레이스 켈리 (문단 편집) === 불행한 결혼생활과 죽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31ce1d98b0a86befbbfe18af5ea3467.jpg |width=100%]]}}} || 레니에 3세와의 사이에서 1957년 장녀 [[카롤린 그리말디|카롤린 공녀(公女)]], 1958년 외아들 [[알베르 2세(모나코)|알베르 2세]], 1965년에는 차녀 [[스테파니 그리말디|스테파니 공녀]]를 낳아 총 1남 2녀를 두었다. 켈리는 알베르 2세를 낳고 스테파니 공녀를 갖기 전에 두 번 임신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해 [[유산(의학)|유산]]을 거듭했다고 한다. 스테파니 공녀가 늦둥이기도 했지만 여러 차례 유산한 뒤에 본 자식이라 더 애지중지했다는 비화가 있다. 스테파니 공녀가 태어난 후에도 한 차례 유산했다. 카롤린 공녀의 탄생으로 레니에 3세에게 적법한 후계자가 생기자 [[프랑스]]에 합병당할 위기를 넘기게 됐는데, 이 때 모나코 전역이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후 켈리 덕분에 모나코에 [[미국인]] 관광객이 폭증했다. 그러나 세기의 결혼 이후, 실제 결혼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켈리는 '배우 생활을 하며 매너를 지키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결혼 이후에 따로 배울 것이 없다.'고 했지만, 공가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모나코에서는 [[프랑스어]]를 썼는데 켈리는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해서 언어 장벽으로 적응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켈리는 자녀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으며 대신 가정교사가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공비로서 공가의 엄격한 규칙이나 전통을 제대로 지켜야 하고, 언제나 긴장하며 위엄을 갖춘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또 크게 웃을 수도, 누구와 잡담을 할 수도 없는 생활이었다.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이 다른 레니에 3세와의 갈등도 많았다. 레니에는 까다롭고 비위 맞추기 어려운 폭군 타입이었지만 켈리는 신혼여행에서부터 남편의 본성을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켈리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급기야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 그러나 어쨌든 레니에 3세는 켈리와 약 23년 간 [[결혼]] 생활을 하며 자녀를 셋이나 낳았고 함께 정성껏 길렀다. 또한 켈리가 사고로 숨지자 생중계되는 그녀의 장례식에서 공의 체통을 다 내려놓고 대놓고 흐느끼며 사별로 인한 슬픔을 못 견디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켈리 사후 20여 년 뒤에야 죽었지만 그때까지 재혼하지 않고 쭉 혼자 살았다. 이런저런 점을 보면 잡음은 있었어도 켈리를 아내로서 나름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어머니]] [[샤를로트 그리말디]]는 자신도 사생아 출신이면서 미국인 평민에 배우 출신인 며느리를 무시하며 따돌렸다.[* 모나코 [[루이 2세(모나코)|루이 2세]]의 사생아로 태어나 친부에게 입양되어 후계자가 되었지만 미천한 모계 등 하도 구설이 많아 그냥 아들 레니에에게 계승권을 넘긴 것.] 시누이 앙투아네트 공녀와의 갈등도 심했는데 앙투아네트는 동생 레니에 3세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켈리 이전에 사귀던 여자와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음모를 꾸민 적도 있었다. 그런 시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못해 시집살이를 꽤나 했다. 결혼 생활도 나빠져 레니에와 그레이스는 각자 바람 났다는 소문이 돌았고 대판 싸운 레니에 3세는 모나코 내에서 켈리의 영화를 상영하는 것을 금지했다. 할리우드의 자유로운 생활을 그리워하던 차에 1962년에 히치콕이 영화 《마니》에 켈리의 출연을 제안해 왔고 배우로 복귀하려 했으나, 영화 속에서 켈리가 맡을 배역이 도벽이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품위 문제로 모나코 언론과 국민들이 크게 반대해서 결국 무산, 켈리가 출연한 영화는 1956년의 《[[필라델피아 스토리#1956년 개작|상류 사회]]》가 마지막이 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692px-Grave_of_Princess_Grace_of_Monaco,_Grace_Kelly_-_Cathédrale_Notre-Dame-Immaculée.jpg|width=100%]]}}} || [[1982년]] [[9월 13일]] 시골 별장이 있던 프랑스 몽 아젤에서 모나코로 돌아가기 위해 운전하던 중 [[https://www.nytimes.com/1982/09/17/world/princess-stricken-before-crash-doctors-say.html|뇌출혈]]로 정신을 잃었고, 차가 산비탈로 굴러 떨어지는 교통사고가 났다. 운전석에 타고 있던 스테파니는 가벼운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지만, 켈리는 치명상을 입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다음날인 9월 14일, 향년 52세로 세상을 떠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